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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빈 항아리다, 그 안에 담기지 않은 모든 것을 품고 있다

2025. 5. 2.

나는 빈 항아리다. 처음 나를 봤을 때,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담을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상상을 했다. 그들은 나를 한 손으로 쥐고, 여러 가지를 채워넣으려 했다. 나를 보고는 “이 안에 무엇을 담으면 좋을까?”라고 물었다. 나도 그것에 대해 알고 싶었다. 무엇이 나를 채울 수 있을까? 내가 무엇을 담을 수 있을까?

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점점 더 비어갔다. 누군가가 나를 채우려 할 때마다, 나는 그 기대를 저버리듯 모든 것을 흘려보냈다. 내가 채워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그들이 나를 돌아보고, 결국 나는 아무것도 담지 않은 채 놓여지게 되었다.

빈 항아리인 나는,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. 사람들은 내가 비어 있다는 사실에 불안감을 느꼈을지 모르지만, 나는 그 비어 있음 속에서 숨겨진 의미를 찾고 있었다. 나는 비어 있을 때, 그 무엇도 없이 완벽했다. 내가 비어 있다는 것, 그것만으로도 내 안에는 끝없는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.

어쩌면 내가 원하는 것은 채워지는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. 내가 계속 비어 있을 때, 사람들은 나에게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. 내 안에 아무것도 없을 때, 나는 오히려 자유로웠다. 그 비어 있음이 나를 가장 진실되게 만들었다. 내 안에 무엇을 담을지 고민하는 것보다, 내가 빈 상태에서 나의 존재를 느끼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.

때로는 사람들이 나를 향해 “왜 이렇게 비어 있어?”라고 묻기도 했다. 나는 그저 조용히 대답했다. “내가 비어 있다는 것은, 내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이다. 나를 채우는 것은 너의 선택이지, 나의 운명이 아니다.”

나는 빈 항아리로서 내 존재를 온전히 느낀다. 내가 무엇이 되기를 바란다 해도, 그 무엇도 나를 규정할 수는 없다. 내가 비어 있을 때, 나는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 된다. 내가 비어 있다는 것은 내가 누구의 필요에도 맞춰지지 않으며, 내가 나만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.

어쩌면 나는 결코 채워지지 않으리라. 그러나 그 비어 있음 속에서 나는 나만의 이야기를 계속 쓰고 있다. 나는 빈 항아리로서, 아직 채워지지 않은 채로 세상에 존재한다.